나는 한국 경제에 대한 분석으로 4권의 책을 냈고, 5권째가 지금 출판사에 가 있고, 나는 지금 6권을 한참 쓰는 중이다. 그래서 본의가 아니게 한국 경제에 대한 장기분석을 종종 하는 편이고, 또 최근의 데이터도 자세하게 보는 편이다. 참고로, 나는 장기분석을 할 때 GDP를 국민 인구수로 나누고, 이것에 대한 미분값, 즉 연간 변동치를 주 변수로 사용한다. 이 편이 실제 경제가 작동된 현황을 나름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불행히도 1970년 이후로만 통계청에 등록되어 있다. 70년 이전의 상황은 이런 방식으로 분석해보지는 못했다.
이 수치에 의하면 한국 경제는 79년 공황, 98년 공황, 이렇게 두 번의 정말 큰 위기가 있었다. 80년에는 0%, 98년에는 -4%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두 번 모두 정권이 바뀌었는데, 한번은 유신 경제가 물러나고 전두환이 집권했고, 또 한번은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정권이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3%로 잡고 있던 정부는 이제야 0% 정도로 조정한다고 하는 것 같다. 스위스의 UBS 은행이 작년 하반기에 이미 마이너스 전망치를 내놓았고,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도 한국 성장률을 이제 마이너스로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 그럼 간단하게 한 번 따져보자. 제조업 가동률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치가 IMF 경제위기보다 더 안 좋다는 것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2월 이후 본격화될 청년 실업 문제와 장년층들에 집중될 구조조정에 의한 해고, 그리고 실제 실물 파산에 의해서 몰려나올 실업자들이다. 정부에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100조를 투입한다고 하는 SOC 사업은 올해 실제로 투입될 수 있는 돈이 얼마 안된다. 게다가 작업 기계화율과 모듈화, 그리고 일자리와 거주지의 격리 등의 이유로, 아마 정부가 예상했던 것의 1/10 정도의 실제 고용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또 1년 미만으로 설정되어있는 단기 인턴, 고용 총량을 증가시키지 않고 임금만 삭감하는 이상한 이명박식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이 이 구도에서 최소한의 고용문제의 완화 효과를 발생시킬 '버퍼' 역할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할 것 같다. 정부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고용 효과가 정책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수 계산할 때 감안해주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부가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내는 일자리 대부분의 단기 비정규직의 형태이므로, '소프트 이노베이션'이라고 부르는 정규직들에게서 나오는 혁신 효과나 연구개발에서 나오는 창의성 효과 같은 것의 손실 역시 장기 계산에서는 감안해주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연간 경제운용의 단기 얘기를 하는 중이므로 일단 고려하지 않겠다.
기존 추세대로라면, 한국의 제조업은 계속해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소위 산업 공동화 현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전임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건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생각하고 서비스업 강화라는 명목으로 한미 FTA에 사실상 국정을 '올인'했고, 결국 정권은 넘겨주었다. 이 실정의 효과는 제조업의 약화 그리고 중소기업 체질의 약화라는 것으로 계속해서 다음 정권에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을 안고 정권을 출발한 이명박 정부는 "SOC가 최고"라고 건설업 살리기로 초지일관 '고고씽'을 외쳐댔는데, 이 상황에서 건설자본이 아닌 다른 제조업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비투자나 기술혁신 같은 것이 진행될 리가 없지 않은가? 외국에서 본 투자자들이나 평가들은 이러한 정부의 모습을 보고 '아,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제조업과 수출업종에 대해서 이 새 정부는 별 대책을 세우지 않겠구나' 판단한 셈이다. 이게 '이명박 디스카운트'의 제 1 요소였다. 시장의 신뢰를 이렇게 작년 하반기에 잃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이 얘기를 대통령에게 해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규제일몰제'를 경제회생을 위해서 도입하겠다는 현 시점에서, 규제와 제도라는 또 다른 요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 얘기는 따로 떼어서 다음 주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미 투자 사이클이 종료되어 가는 석유화학업종, 포화된 이 시점에서 새롭게 가동되기 시작하는 아산의 현대제철과 포스코 사이의 조율의 문제, 아직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영 주체와 경영 집단을 갖추지 못한 쌍용차 문제, 그리고 중소기업 전반에 걸친 자금경색 등 풀어야 할 실물경제의 문제가 산적하게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강남 3구의 투기지역 완화와 아무리 높다고 해도 겨우 건물 한 채 짓는 송파 제 2롯데월드 문제 등에나 매달리고 있으니, 밑에서 아무리 죽겠다고 해도 벙커 안에 들어간 경제지휘부에 그런 얘기들이 제대로 전달이나 되었겠나? 나는 그들이 현실은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이 정도 몇 가지 변수들을 놓고 올해 경제를 예상해보자. 제조업의 위기와 관치금융의 부활, 그리고 부동산 경제에 대한 올인이라는 세 가지 요소들은 현 국민경제 위기의 내인들이다. 여기에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에 의한 제조업 혁신능력의 상실이 겹치면서, 현 위기국면의 요소들이 무르익었다. 국제금융의 위기는 소위 '격발 효과(trigerring effect)'라고 부르는 내인들을 폭발시킨 격발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으면, 세계 경제가 좋아지면서 자동적으로 한국 수출이 주도하는 경제 호황기가 올 것이라는 예측은, 정말로 너무 무모한 낙관론 같아 보인다.
이 상황에서 아마 한국 경제는 실물부문에서 -5% 정도의 성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IMF 위기 때보다 조금 더 큰 위기이다. 그러나 IMF 때에는 원화 절하가 초기를 제외하면 낮아진 상태에서 금방 진정이 된 경우인데, 한국의 원화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점차적으로 실물 위기가 드러나면서 원화가 추가적으로 5% 정도 절하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렇게 두 가지의 요소를 더하면 금년도 달러로 평가된 1인당 GDP는 -10%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위기의 요소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국 경제에 언제나 잠재된 대북 위기는 아직 이러한 위기 요소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실용 경제'를 주창했으면, 정말 이런 문제 정도는 실용적으로 풀어도 되지 않는가? 비핵 개방 3000, 다 좋다. 선거에서 이긴 자가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어떤 정책을 쓰던지, 경우에 따라서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꼭 지금 밀어붙여서 '대북 위기'를 지금 폭발시켜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0% 혹은 가벼운 마이너스 성장 정도로 상반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하반기부터는 성장세를 보이고자 하는 것이 현 경제운용 기조의 목표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것저것 가능한 요소들을 모아놓고 보면, 올해는 -10%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적인 경제공황이 일종의 '극값'으로 전혀 설정되지 않을 것도 아니다. 미국 경제가 올해 살아난다는 보장이 있는가? 중국의 경제진흥책이 작동해서 8% 성장을 기록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지금의 0% 성장도 이런 극단적인 가정 위에 서 있는 것들 아닌가?
여기에 올해는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개도국들을 중심으로, 그 나라도 비상운용을 해야하기 때문에, WTO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황당한 수입규제들을 마구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지금 지뢰밭, 폭탄밭을 걸어가는 중인데, 좀 조심스럽게 걸어도 위태로운데, 경찰들 힘에 의지하면서 질주하니, 걱정되지 않을 수 있는가?
경제학자로서 내가 이해한 올해 한국 경제의 상황은 대체적으로 이렇다.
이 정도면 잠재성장률 5%에 2%를 더 높여서 7% 성장을 하겠다고 했던 국민경제의 운용 주체들이 사과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이 정도면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민경제의 주체인 국민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좋다. 전대미문의 이 위기 앞에서, 국민들을 적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집토끼', '산토끼', 그런 얘기 하면서 정치공학적으로 국민경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건전한 경제에 대한 이해는 아니다. 그런 건 정치공학자들에게 맡겨두어도 좋을 듯 싶다.
힘으로 국민을 누르는 것은, 이 위기에서 좋은 해법은 아니다. 선량한 국민들이다. IMF위기 때 금가락지들도 다 빼서 일단 쓰라고 국가에 내주었던 국민들인데, 그 국민들이 '산토끼'라고 토끼몰이 하듯 몰고 가는 것은 이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한국 국민들은 OECD 기준으로 보아도 선량하고 착하기는 해도, 바보는 아니다. 지난 번 원탁회의의 기록적으로 저조한 시청률에서 보지 않았는가? 지금 대통령은 한국에서 '왕따'다. 그리고 쿠테타의 빌미를 주었던 윤보선 대통령에 비교될 정도로 최악의 경제 무능자로 이 왕따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다.
해법은, 위기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국민들과 토론을 하면서, 그렇게 정상적인 방식으로 국민경제를 운용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국민하고 전쟁하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도대체 아무도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지하벙커에 틀어 앉아서 경제대책을 만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밀실행정'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벙커행정'이라는 말은 나도 처음 들어봤다.
노사정도 좋고, 국민위원회도 좋고, 대타협위원회도 좋다. 이름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결국은 국민들이 일을 더 하든지, 세금을 더 내든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고통을 분담해야 이 상황을 풀어나갈 것 아닌가? 법치라고 하지만, 모든 법은 다 정신이 있는 것이고, 그 정신을 법 혹은 조례 등으로 규정한 정책을 통해서 국민경제도 운용하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의 경제 철학이 국민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 국민경제는 경찰이 대신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경제 지표에서 마이너스 10이라는 수치가 하반기 그 어느 시점에 정말로 신문에 떴을 때, 아무리 경찰정권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 수치는 수 십만 철거민, 수 백만 실업자, 그리고 1000만명 이상의 신용불량자를 의미한다. 10만 경찰 가지고 이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는 감당 못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 '신빈곤'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걸 인정하고,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다보면, 성장률은 저절로 올라가고, 경제위기는 해소된다.
정말로 좋은 국민경제의 원칙은 너무너무 간단한 것이다. 국민이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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