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감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만 여성 25명을 대상으로 작은 실험이 이뤄졌다. 살을 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뺄 수 있을지 먼저 물었다. 그리고 6개월 후 결과를 봤다. 결과는? 자신이 살을 뺄 것이라 확신하고 맛난 도넛 접시도 자신있게 외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살이 덜 빠졌다.
살을 뺀 후 본인 매력에 대해 유난히 높은 점수를 주고 날씬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것이라 상상했던 사람들은 체중 감량에 실패했다. 그들은 살을 빼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12㎏이나 덜 빠졌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오히려 살이 덜 빠진 이유는 노력 부족 때문이었다. 살을 뺀 자기 모습에 몰입할수록 이미 체중 감량이 된 것 같은 위안을 받은 참가자들은 시작부터 해이해졌다. 반면 살이 잘 안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기를 써서 독하게 살을 뺐다. 낙관적 사고의 역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이 이뤄지도록 도와줄 것이다.’ 파울루 코엘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 대사처럼 우리는 긍정과 소망의 파워에 무한대 신뢰를 보여왔다. 일단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이미 꿈은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사고는 개척자 정신과 마찬가지로 개인 인생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것으로 믿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들은 끊임없이 낙관과 희망을 말하며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미 긍정적 사고의 무력함엔 수차례 지적이 가해졌다. 사회적으로도 ‘국민 성공’이나 ‘국민 행복’과 같은 구호가 나중엔 허망함만 남기곤 했다.
이 때문에 심리학 대가 가브리엘 외팅겐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긍정적 사고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쐐기를 박는다. 낙관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꿈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하는 판타지 때문에 성취욕이 오히려 약해진다는 것이다.
외팅겐 교수는 매경MBA팀과 인터뷰하면서 “장밋빛 미래만을 생각하는 낙관적 사고는 역설적으로 목표 달성에 해롭다. 리더라면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선 희망을 제시한 후 반드시 장애물도 함께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외팅겐 교수와 일문일답한 내용.
―낙관적인 사고는 항상 선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긍정적인 사고로 인한 폐해를 줄곧 주장한 것이 눈에 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소망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해 그 소망이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아무 걱정 없이 잘될 것이란 낙관이 오히려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 판타지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꼭 일어날 것이라고 꿈꾸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일이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판타지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목표 달성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결국 노력 부족으로 소망은 이뤄지지 않고 좌절과 실망에만 빠질 뿐이다.
실제로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해보니 마음에 드는 여성과 데이트하는 상상을 많이 한 학생일수록 다섯 달 후 결과를 보니 여전히 말 한 번 못 붙여보고 상상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타지에 안주하다 보니 데이트를 시작하기 위한 용기는 못 낸 것이다
―판타지와 기대는 무엇이 다른가.
▶판타지가 두루뭉술한 희망이라면 기대는 확률이나 과거 경험에 기반한 탄탄한 믿음이다. 판타지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도전해야 하는 난관이나 수고로움을 잊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기대는 보다 냉정하다. 강한 기대를 하는 사람은 확률과 경험을 통해 자기 소망이 이뤄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한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얼마만 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지도 안다. 그러기 때문에 기대는 단순한 긍정적 사고의 부산물인 판타지와는 다르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목표 달성에 성공한 사례엔 이런 기대의 역할이 개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과거 경험이나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잡았고 그 가능성을 신뢰하는 기대가 있어서다. 이런 사례라면 낙관적으로 사고해도 별문제가 없지만 근거 없는 낙관적 사고는 방해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긍정적 사고를 하면서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자기 소망을 장밋빛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후에는 반드시 차가운 현실적 여건을 생각하라. 꿈을 생각하고 난 후에 장애물을 떠올리는 것이다. 나는 이걸 ‘정신적 대비(Mental contrasting)’라고 한다. ‘정신적 대비’는 간절한 목표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면서도 장애물에 도전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게 한다. 장애물을 바로 떠올리는 것이 목표 달성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연구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오히려 장애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분발하고 에너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B3면에 계속
▶정신적 대비는 긍정적 사고가 가지는 부작용을 예방해준다. 일단 긍정적 사고는 꿈꾸는 사람을 릴랙스하게 만든다. 소망이 이뤄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과정에서 이미 꿈이 이뤄졌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을 정신적 대비가 막아준다. 장애물과 난관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차가운 현실 인식을 통해서다.
두 번째는 정신적 대비를 통해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를 일찌감치 포기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인한 폐단은 장애물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자기가 꼭 받아들여야 할 위험신호나 정보를 무시하게 된다. 중간에라도 방향을 전환하거나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목표를 붙잡고 있으면 나중에 좌절감만 쌓일 뿐이다.
―중간에 목표를 포기한다면 정신적 대비가 오히려 긍정적 사고보다 더 나쁜 게 아닌가.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는 데 정신적 대비의 미덕이 있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목표에 매달리는 것은 현실을 깨달은 후 겪을 좌절과 분노를 생각하면 오히려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소망을 먼저 제시하고 그다음 현실을 제시하는 정신적 대비가 항상 효과를 내는 건 아니다. 정신적 대비의 선결 조건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정신적 대비는 항상 동기 부여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지는 않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목표엔 정신적 대비가 오히려 의욕을 꺾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하다. 장애물이 너무 거대해 보이면 처음부터 포기할 테니.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들로선 직원들 기 살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무턱대고 낙관적인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할 순 없는 노릇인데, 그렇다고 위기 상황만 강조하기도 어렵다.
▶강력한 동기 부여를 위해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는 달성할 만하다는 신념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수많은 난관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낙관적 소망과 비관적 현실을 대비시키는 정신적 대비를 통해 구성원들은 자신들 노력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관건은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너무 과다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구성원이 목표 자체를 아예 불신하게 만든다. 리더 자신도 믿음이 없는 목표에 어떤 구성원이 헌신하겠는가.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긍정적 사고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나.
▶1933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대통령 취임사와 그 후 경제 상황을 분석해봤다. 취임사가 더욱 화려하고 낙관적일수록 그해 GDP는 낮고 실업률은 높게 나왔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때 취임사에는 낙관적인 수사만 가득했는데 결과는 대공황이었다. 반면 레이건 대통령 취임사는 우울했지만 그해는 호경기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으나 낙관적인 약속이 사회 구성원들의 성취욕을 차단하고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노력을 약하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리더에겐 낙관적인 언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낙관적인 리더는 희생과 고난 없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부추긴다. 진정한 리더라면 잠시 인기를 포기하더라도 냉엄한 현실을 제시해야 한다(가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2차대전 중 “여러분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피와 땀뿐”이라고 얘기했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봐라”고 말했다. 모두 어두운 현실을 보여줘 사회 구성원에게 노력을 촉구하는 명언들이다).
―그렇지만 자기 실현적 예언은 이미 경제 분야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낙관적인 경제 전망이 실제로도 호황을 이끌어낸다는 법칙이다.
▶자기 실현적 예언은 부정할 수 없는 경제 법칙이다. 그러나 막연히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거나 좋아져야 한다는 믿음만으로 실제 경기가 살아난다는 말은 아니다. 자기 실현적 예언이 실현되기 위해선 과학적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기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데이터들이 널렸는데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그대로 실현되는 건 아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예상하고 또 그 상황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을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 한다.
―소망을 제시할 땐 꼭 차가운 현실을 같이 덧붙이라고 했다. 그러면 반대일 때는 어떤가. 현실을 먼저 제시한 후 소망을 덧붙이는 것 말이다.
▶그런 역(逆)정신적 대비는 동기 부여에 효과를 못 낸다. 차가운 현실을 먼저 접하게 되면 의욕이 꺾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말 기다리고 있었던 즐거운 파티에 참석하는 소망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파티에 가서 제대로 놀려면 일단 주중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금요일에 있는 시험을 잘 쳐야 한다. 파티에 대한 상상을 한 후 시험을 생각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험에 대한 공포심을 잔뜩 심어준 후 끄트머리에 가서 그래도 주말에는 파티에 가니까 공부해라고 얘기한다면 역효과다. 이때는 시험이라는 장애물이 먼저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파티에 대한 흥미도 잃게 된다.
―성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판타지에서도 목표 달성을 위해 강한 에너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 성격은 목표 달성에 큰 영향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관적인 청사진이 제시될 때 노력이나 에너지 투입을 결정하는 건 목표달성 가능성이었다. 성격, 연령, 직업과 무관하게 실현 가능성이 높은 목표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소망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낙관적인 생각을 무조건 막을 건 아니지 않나.
▶단기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꿈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장기적으로 보면 낙관적인 생각은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을 줄인다. 더 나쁜 건 아예 현실성 없는 목표을 접지 못하고 매달리게 한다. 목표 달성이 실패한 후 남는 건 쓰디쓴 좌절이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위안은 접어두고 장기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게 낫다. 고생스러워도 장애물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끈질긴 시도만이 답이다.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정신적 대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WOOP, 네 글자를 기억하면 된다. 일단 간절히 원하는 소망(Wish)을 생각하고 그 소망을 달성했을 때 즐거운 결과(Outcome)와 경험을 떠올려라. 그런 다음 장애물(Obstacle)을 염두에 두고 그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Plan)을 세우면 된다.
―상사가 열심히 하는 직원들에게 따끔하고 부정적인 비판을 해줘도 괜찮은가. 따끔하고 부정적인 비판이 기를 죽일지는 몰라도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오기는 더 부추길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일단 소망이 이룰 수 있는 수준이라면 부정적인 피드백으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고 알고 있다면 이는 그나마 있는 에너지도 꺾는다. 리더라면 부하직원들이 그 목표가 성사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헤아려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야 할 것이다.
■ She is…
가브리엘 외팅겐(Gabriele Oettingen)은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다. 독일 출신 학자로 함부르크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으며 사람의 행동과 감정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저술했다. 최근에는 긍정적 사고로 인한 부작용을 경계하는 낙관적 사고에 관한 사고(Rethinking Positive Thinking : Inside the New Science of Motivation)라는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