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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품질경영

모토롤라 품질이야기

모토롤라의 품질혁신 추진사례

 

⑴ 품질혁신의 추진과정

모토롤라의 60년 역사는 현대 통신기기의 발달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69년 7월 아폴로 우주선의 선장이었던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이 작은 발걸음 하나는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발걸음”이라고 외친 생생한 육성이 머나먼 달로부터 지구에 전송되어 전세계를 감격시켰던 것도 모토롤라의 통신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1928년 폴 갤빈(Paul Galvin)은 5명의 종업원과 5백 65달러의 자본금으로 시카고에 갤빈제조회사를 설립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건전지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던 라디오를 가정용 전류로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배터리 엘리미네이터’라는 상품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대공황기였기 때문에 그들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갤빈은 라디오가 미국인들의 자동차 문화의 한 부분으로 성장할 것을 감지하고 자동차용 라디오를 생산하기로 결정하였다. 1930년에 출시된 모토롤라라는 상표의 자동차용 라디오는 그들의 첫 히트상품이 되었다. 모토롤라라는 말은 갤빈이 만든 ‘이동 중의 소리’라는 뜻의 조어(造語)인데, 자동차(Motor)와 축음기(Victrola)라는 두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1959년 창업자인 폴 갤빈이 사망할 당시 모토롤라는 군사, 우주 및 상업용 통신의 선두주자가 되었으며, 반도체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일반 소비자용 전자산업으로 사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하이테크 산업으로의 구조조정

창업자 폴 갤빈의 아들인 로버트 갤빈(Robert W. Galvin)은 모토롤라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탁월한 경영자로 인정받고 있다. 로버트가 아버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하여 다른 지원자들과 마찬가지로 3시간을 대기한 후 면접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폴 갤빈의 사망 직후의 1960년대는 모토롤라가 장기적인 사업방향을 확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방황기였다.

이러한 방황기를 거치면서 모토롤라는 크게 두 가지 사업방향을 확정짓게 된다.

첫 번째 전략은 국제화였다.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고, 일본을 포함한 8개국에 모토롤라의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61년에 일본 사무소를 개설한 뒤 1968년에는 일본에 반도체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반도체의 설계와 제조 및 판매를 모두 현지에서 수행하였다.

두 번째 전략은 가전부문을 포기하고 하이테크부문으로 사업구조를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말에는 자사의 본업이었던 자동차용 라디오 사업부마저 포기하고 하이테크부문으로 완전히 사업을 재구축하였다. 이러한 전략적 노력에 힘입어 80년 세계최초로 무선호출기와 휴대폰을 개발하여 상용화함으로써 모토롤라는 제2의 도약을 하게 된다.

원래 셀룰러 휴대폰(Cellular Phone)은 1970년대 초반 벨연구소에서 개발된 것이다. 당시의 시스템은 하나의 지역을 여러 구획으로 세분화한 뒤 세분화 된 각 구역인 셀을 666개의 채널을 가진 송신장치로 연결시키는 방식이었다. 사용자가 통화 중 하나의 셀에서 다른 셀로 이동하면 가동 중이던 기존의 채널 대신 새로운 셀의 채널이 할당되는 셀룰러 방식은 이용가능한 가입자 수의 용량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모토롤라는 이러한 계획의 설계를 지원하고 시험장비와 신호변환장치를 제공함으로써 이 분야의 첨단기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모토롤라는 당초 이 셀룰러폰 시장에 1990년 초까지 1백만명 정도가 가입할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1989년에 이미 400만명을 돌파하여 엄청난 황금시장이 되었다. 이것은 모토롤라의 사업구조조정이 결국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갤빈 회장의 탁월한 품질리더십

1979년 시카고 시내의 한 호텔에서 개최된 3일간의 간부회의는 모토롤라가 품질혁신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80명의 간부들이 참여한 이 회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3일 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아트 선드리(Art Sundry)라는 세일즈 매니저가 일어나 발언을 하였다 : “좋은 의제들을 다루었다.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다루어야 할 주제를 다루지 못했다. 우리의 품질은 형편없다. 고객들은 우리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모토롤라는 시장점유율이 50퍼센트가 넘는 확고부동한 업계 제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선드리가 맡고 있던 쌍방향 무선기 사업부는 성장률, 수익성, 시장점유율 모두에서 가장 우수한 실적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신뢰성, 납품기간 및 기타 다른 측면에서 고객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회장이던 로버트 갤빈은 “우리의 품질은 형편없다(Our Quality Stinks)”는 선드리의 발언은 모토롤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하나의 계시였으며, 그의 지적이 기폭제가 된 것은 시의적절성에 있었다고 한다.

갤빈은 기업활동의 최우선 순위를 품질에 두기로 결정하고, 매월 개최되는 운영위원회의 안건에 품질문제를 포함시키도록 하였다. 이사회를 제외하고 나면 운영위원회는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였다. 그러나 아침 8시에 시작되는 운영위원회는 예산이나 재무성과와 같은 당면문제들을 검토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였기 때문에, 정작 품질문제를 다룰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사오개월 동안의 운영실태에 실망한 갤빈은 운영위원회의 회의진행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서 품질문제를 가장 먼저 다루도록 하였다. 품질문제에 대한 안건 토의가 끝나면 그는 곧바로 회의장을 떠났다. 재무성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품질이 좋으면 수익은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그의 믿음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회장 자신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품질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5년내 10배 개선이라는 대담한 목표

1981년 운영위원회는 조직 내 모든 부문이 5년 내에 10배의 품질개선을 이룩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였다. 품질은 고객이 결정한다는 정신에 따라, 구체적인 품질척도는 각 사업부와 팀에게 일임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품질척도를 사용하든지 간에 1986년까지 10배의 개선을 이룩하는 것이 목표였다. 5년동안에 10배의 개선을 성취한다는 것은 매년 60퍼센트의 개선을 달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대다수의 종업원들은 그것이 실현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이라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기업문화로서는 매년 10내지 15퍼센트의 개선을 이룩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5년내 10배 개선이라는 목표의 엄밀한 근거는 없었지만 미국시장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던 일본의 공세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 경영진의 생각이었다.

모토롤라는 고객들이 사용현장에서 발생하는 고장빈도를 가지고 품질을 평가한다는 것을 알아냈으나, 고장을 유발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1982년 펜실베니아주의 경찰로부터 대규모 통신시스템을 수주하고서 문제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모토롤라의 전문가들은 사용현장의 고장데이타와 제조일련번호를 추적함으로써 매우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제조현장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수리를 많이 거친 것일수록 실사용시 고장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단지 검사만을 통해 품질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재된 결함의 수가 많을수록 검사에서 발견되지 못하는 결함이 늘어나며, 검사를 통해 찾아낸 결함도 완전한 상태로 복구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사후검사를 통해서는 품질을 관리할 수 없으며, 문제를 유발한 공정 자체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실로 중대한 깨달음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2년 후 비약적 품질개선의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품질은 공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후 공정 자체의 개선에 주력하였으나, 부문별로 사용하는 품질척도가 각기 달랐기 때문에 품질의 개선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다음 문제에 봉착하였다. 그러나 제조단계에서의 결함과 사용현장에서의 결함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영진은 ‘작업단위당 결함수’를 공통의 품질척도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측정이 없으면 개선이 없다는 오래된 금언이 측정의 중요성을 말해 주었듯이, 공통의 품질척도를 갖게 된 후 모토롤라의 품질개선 속도는 급속히 빨라졌다.

모토롤라는 곧 벤치마킹에 착수하였다. 개선팀들은 제조부문 뿐 아니라 설계, 유통, 회계 등 모든 부문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조직들을 찾아나섰다. 그것은 동종 산업 내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최고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조직이 자사와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지 않고, 조사방문이 허용되는 한 그들의 성과와 그 비결을 벤치마킹하고 배우기 위한 방문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덕분으로 1986년이 되자 당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10배의 품질개선 목표가 달성되었다.

 

식스시그마를 새로운 목표로 삼다

5년내 10배의 품질개선이라는 야심찬 목표가 달성되었지만 모토롤라는 거기에 안주할 여유가 없었다. 사실상 동일한 부품과 유사한 제조공정을 가진 다른 제조업체들 중 모토롤라의 품질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1987년 1월 모토롤라는 2년 동안에 10배의 품질개선을 이룩한다는 한층 더 높은 새로운 품질목표를 발표하여 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식스시그마 품질혁신으로 널리 알려진 이 계획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1989년 초까지 10배의 개선을 이룩한다.

․1991년 초까지 또 다시 10배의 개선을 이룩한다.

1992년 1월 1일까지 자사의 모든 업무에서 “식스시그마” 품질을 달성한다.

 

식스시그마(6 )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그마는 그리이스 철자의 18번째 글자로서통계학에서는 특성치의 산포를 나타낸다. 시그마 앞의 계수값이 커질수록 불량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식스시그마 품질수준이란 3.4ppm으로서, 100만개 중 평균 3.4개 정도의 불량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불량률 수준 0.00034퍼센트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무결에 가깝다. 1981년 품질혁신에 착수할 당시 모토롤라의 품질수준이 6,000ppm 정도였으므로 새로운 계획이 달성된다면 1992년 초에는 3.4ppm이 달성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 제품과 공정에서는 식스시그마 품질목표가 달성되었거나 초과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모토롤라는 아직도 식스시그마 품질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식스시그마 품질목표의 달성을 계획했던 1992년에는 회사 전체로 볼 때 5시그마와 6시그마 사이의 품질수준인 150ppm 품질수준을 달성하였다. 당초의 목표였던 3.4ppm 수준에는 크게 못미치고 있지만, 이러한 야심찬 목표가 아니었다면 결코 넘어 볼 수 없는 높은 품질수준이 달성된 것이다. 1997년 초에는 20ppm까지 불량률 수준을 낮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년마다 10배의 품질개선이라는 모토롤라의 대담한 품질혁신 목표가 식스시그마에서 멈춘 것은 아니다. 모토롤라는 21세기에 진입할 때까지 2년마다 10배의 개선이라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이렇게 된다면 21세기 초에는 10억개당 하나의 불량만 허용하는 1ppb(parts per billion) 품질수준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모토롤라가 이렇게까지 품질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가 되면 하나의 반도체에 10억개 정도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 품질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ppb단위의 품질수준이 불가피하다고 모토롤라는 판단하고 있다.

 

⑵ 모토롤라의 사례가 주는 교훈

모토롤라의 성장과 시련의 역사는 강자로서 장수하기를 원하는 기업이라면 누구라도 다각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 모토롤라가 주는 여러가지 교훈 중 두가지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담한 혁신의 목표를 세우라.

“5년 동안 10배의 품질개선”이라는 목표를 세울 당시 모토롤라의 경영진조차도 그 성공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이러한 대담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으면 기존의 운영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변화와 혁신을 성취하기 힘들다. 피터 드러커 교수는 지식노동자의 발전의 정도는 욕구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은 기업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혁신의 선봉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GE사의 잭 웰치 회장도 목표는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 높게 잡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과 조직의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품질을 높이면 비용이 줄어든다.

모토롤라가 야심찬 품질혁신 활동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품질수준이야 높이면 좋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엄청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완전무결을 지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통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토롤라가 식스시그마 품질혁신을 추진한 1987년부터 1992년 사이의 5년간 무려 32억 달러의 비용이 절감되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품질혁신 자체가 상당히 좋은 사업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품질을 높이면 비용이 줄어든다는 이러한 현상은 품질불량을 찾아내고 처리하는데 허비되는 공장의 능력을 지칭하는 ‘숨겨진 공장(Hidden Plant)?의 규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로버트 갤빈의 뒤를 이어 식스시그마 품질혁신을 주도하였던 모토롤라의 죠지 피셔 전(前)회장도 이러한 경험을 갖고 있다. 1982년 당시 피셔는 엄격하게 보호받고 있던 일본의 통신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일본 NTT의 품질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가 속한 팀이 만든 무선호출기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호출기 보다 5배나 까다로운 품질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결론적으로 모토롤라의 품질혁신은 흔들림 없는 경영진의 강력한 지원과 대담하고도 야심찬 개선목표 및 이를 달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벤치마킹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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