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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군주론

이런 고백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군주론>, 몇 번 읽기를 시도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매번 책을 열고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다가는 덮고, 또 그런 일을 몇 차례 반복했었습니다.

제깐에는 열심히 책을 읽어왔고, 또 이런 고전은 손에 익숙하다 싶었는데, <군주론>만은 이상하게 그렇게 몇 번씩이나 내 손에서 비껴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은 제 책장 한 켠에 자리만 차지한 채 그냥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군주론>을 그냥 맨바닥에 헤딩하듯이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군주론>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읽기에 앞서 그 책이 나오게 된 계기라던가, 그 책이 사상사(思想史)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등을 알고 읽었더라면 그런 실패를 겪지 않았어도 될 것인데,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좋은 책을 고른다는 것, 그런 안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신동준 선생이 번역한 <마키아벨리 군주론>입니다.

신동준 선생은 그전에 <왜 지금 한비자인가>라는 책과 <후흑학>을 읽어, 그의 경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라, ‘그래 이번에는 기필코 군주론을 정복하고 말테다라는 각오를 하며 이 책에 덤벼들었습니다.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 책은 다른 <군주론> 번역본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몇 번의 읽기 실패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정말 정성들여 쓴 책인만큼 그 정도 정성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입니다.

먼저 군주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이라 할까요? 아니면 식사를 하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전채 요리를 먹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성격을 가진 입문서가 배치되어 있어 이해를 돕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이탈리아 역사 개관 “<군주론> 출현배경 및 용어해설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을 먼저 정독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번역본(강정인, 박상섭 번역본이 아닌)은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본론 이해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41쪽의 <원문과 번역>이란 항목은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다보면, 이 책이 왜 잘 된 번역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문장입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코자 하는 군주는 시의에 따라 때로는 악하게 굴거나, 또는 악행을 저지르거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76)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볼까요?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강정인)

 

이 책의 역자에 의하면, 강정인 역본에서는 악하거나라는 대목을 빼놓았다는 것입니다.(41쪽)  그러니 마키아벨리의 참 뜻을 불완전하게 전한 결과가 되었지요.

 

또 다른 번역본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사악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권혁, 돋을새김, 132)

 

이 번역은 시의에 따라라는 대목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라고 번역한 오역입니다. 그 것은 이 책의 역자가 <군주론의 용어해설>에서 네체시타를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는데(53쪽), 이 번역은 그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사실상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요체가 되는 구절이기 때문에, 이 문장을 잘 못 번역해 놓는다면, 독자들도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잘 못 읽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이 문장의 번역을 잘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 문장 하나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요약한 것이며, 군주론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말 한마디가 그 전의 모든 정치사상과 결별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은 이 책은 그래서 다른 번역본들보다는 한 걸음 더 정확도를 향해 나간 책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주장합니다. 군주는? 선한 도덕을 시행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도덕적 당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관심을 두는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누구 - 여기 이 책에서는 풀라톤 등을 지칭함 - 의 말보다도 타당한 말입니다.

 

“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매달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소홀히 하는 자는 자신의 보존보다 파멸을 훨씬 빠르게 배우게 된다. 매사에 선을 내세우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몰락할 공산이 크다.”(176)

 

그리고 또한 43쪽의 ‘<군주론>의 용어 해설은 몇 번이고 읽어서 그 내용을 새겨 놓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다른 번역본에서 만나게 되는 애매모호함은 바로 이 장에서 역자가 설명한 내용들을 이해함으로 해결됩니다. 역자는 군주론을 관통할 수 있는 키워드를 뽑아내는데, 프린치페, 스타토, 비르투, 포르투나, 네체시타, 이렇게 다섯 개입니다. 이런 키워드를 몇 번이고 새겨서 체화할 수만 있다면 <군주론>은 술술 읽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읽어본 결과 지금까지는 막막하게 보였던 <군주론>이 실체를 드러나게 되었고, ‘앞뒤 문장이 왜 이렇게 연결되는거지?’ 하면서 의아해 하던 부분들이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군주론>의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그동안 숨어있던 것처럼 보였던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책을 읽은 큰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과는 별개로 이 책 <군주론>을 읽어야 할 필요성은 도처에 다음과 같은 명언들을 발견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군주는 앞서 언급한 선한 품성을 구비하지 못할지라도 마치 이를 구비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다. 장담컨대 실제로 그런 뛰어난 품성을 구비해 행동으로 옮기면 늘 군주에게 해롭지만, 구비한 것처럼 가장하면 오히려 이롭다”(195)

 

이런 말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회와 국가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며, 또한 그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제대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주는 증오를 촉발할 일은 남에게 맡기고, 칭송을 받을 일은 자신이 도맡아야 한다.”(204)

 

이 말은 우리나라의 정치역사상 몇 번이나 사용된 - 정치가들이 써먹은 - 방법입니다. 그런 것을 꿰뜷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라고, 마키아벨리는 이런 책을 지은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이며, 군주론을 여러 번 읽었지만 그 실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교정자의 역할을 하리라 확신합니다.

 

좋은 책 제대로 옮겨주신 역자와, <군주론> 번역서가 많은 가운데 시장성을 바라보지 않고 출판을 결행(?)한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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