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들 내 앞에선 어려워한다. 이 과장만 해도 그렇다. 겉으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놓고 일하는 것을 보면 정말 딱 시키는 것만 겨우 해낸다. 차라리 대놓고 어렵다고 말했으면 미리 대책이라도 세울 텐데 그런 내색도 보이지 않는다. 조 과장은 또 어떤가? 예전 팀에선 아이디어 뱅크였다고 들어 기대가 컸는데 제대로 된 아이디어 하나 내놓는 것이 없다. 엉성한 이야기 몇 개 꺼내기에 ‘신중하게 말하라’고 했더니 입을 싹 닫아버린다. 그렇게 상처를 잘 받아 뭐에 쓸까 싶다.
어떻게든 프로젝트의 결과는 잘 내야 한다. 벌써 며칠째 두세 시간 밖에 못 자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녀석은 정 대리다. 며칠 전에는 “부장님 힘드시죠?” 하며 레몬차를 내밀었다. “야 이 녀석아. 레몬차 안 줘도 돼. 일만 좀 실수 없게 하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예, 알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녀석이 밉지 않다. 정 대리는 실수가 잦다. 기안을 만들어오면 하나하나 짚어줘야 한다. 이건 이렇게 해야만 하고, 이런 것은 절대 안 되고. 이렇게 꼼꼼히 봐주는 것도 다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건데 그 녀석이 알는지 모르겠다.
김 부장은 승승장구해왔다. 맡은 일은 실수 없이 하려고 늘 노력했다. 하늘은 노력하는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남과 똑같이 해서는 남들 이상 갈 수 없다. 남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남 위에 설 수 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결과다. 조직은 결과를 원하고 나는 결과를 내왔다. 덕분에 승진도 빨랐고 위에서 나를 믿고 있다.
그런데 부장이 되면서 위기가 닥쳤다. 팀원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위에서는 결과를 내라고 닦달하는데 미칠 지경이다. 팀원들이 왜 다들 이 모양인지. 제대로 일할 생각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내 밑에 있으면 좋으련만. 왜 나는 내 선배들 같은 운이 없는 걸까?
김 부장은 분명 유능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과가 그 증거다. 하지만 그의 유능은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더 이상 유능하지 않다. 왜 그럴까? 그가 달라졌을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녹슬고 문제에 대한 분석 능력이 무뎌졌을까? 성실한 태도가 약해지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해이해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여전하다. 아니 예전보다 더 노력한다. 깔때기처럼 좁아지는 조직, 위로 갈수록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을 잘 아는 그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력을 포기할리 없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한때 자신에게 가장 큰 무기가 이제 가장 큰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추운 겨울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던 외투, 얼어 죽을 것만 같은 순간 나를 지탱해주던 외투라도 봄이 되면 벗어야 한다. 아무리 고맙더라도 계속 입고 있으면 나는 더 이상 제대로 걸을 수 없다. 봄을 살아갈 수 없다. 직장 초년병 시절 김 부장은 스스로를 통제하며 완벽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대단했고 김 부장은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을 추구하는 자신의 태도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젊을 때는 자기 혼자 노력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관여하는 일도 많지 않기에 얼마든지 집중할 수 있다. 체력도 좋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직급이 높아지면 관여하는 일이 많아진다. 일을 수행할 때 관계하는 사람의 수도 급격히 늘어난다. 혼자서 해서 될 일은 별로 없고 조직을 움직여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 남이 노력하도록 만들어야 일이 되어간다. 그런데 조직은 간섭이 지나치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로체스터 대학의 에드워드 데시 교수는 이런 실험을 했다. 교사들을 실험실로 불러 아이들에게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치게 했다. 사전에 충분한 준비 시간을 갖도록 하고, 주의해야 할 부분과 아이들의 질문에 대응하는 방법도 충분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눈 후 학생들을 가르치게 했는데 한 집단에만 이렇게 부탁했다. “가르치고 나면 시험을 볼 텐데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도록 해주세요.”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들이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받은 교사들은 그렇지 않은 교사들에 비해 수업 중 말하는 시간이 두 배나 길었다. 명령하는 말이나 통제적인 언어 모두 세 배나 증가했다. 결과에 집착할수록 교사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더 개입하려 하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는 비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은 그 반대다. 교사가 통제적으로 행동할수록 학생들은 학습 동기가 떨어지고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도 약해진다. 결국 열심히 한 덕분에 결과는 나빠진다.
김 부장은 지금 열심이다. 덕분에 그의 팀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좋은 결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조바심은 그가 조직을 더 통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럴수록 팀원들의 자율성은 떨어지고 성취하려는 동기는 약해진다. ‘크게 욕만 먹지 않으면 되지.’ 정도에 목표 수준을 맞춘다. 김 부장을 물 먹이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의 결과다.
김 부장에겐 성공이 중요했다. 성공은 곧 인정이고 그에겐 존재의 확인이었다. 그와 부모의 관계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는 이야기한다. “부모가 다 그렇지요.” 하지만 부모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체념은 쓸쓸하다. 그와 부모는 깊은 교감이 없다. 함께 즐기고, 함께 슬퍼하고, 힘든 순간을 같이 넘어온 경험이 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만족시켰다. 잘 해내서 인정을 받았고, 인정을 받지 못할까봐 잘 해야만 했다. 부모가 잘하라고 그를 몰아붙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잘 하지 못한 그에겐 반응하지 않았다. 아들이 응석받이가 될까봐 두려웠던 부모는 그가 잘 했을 때만 겨우 기뻐했다. 그조차 충분치 않았다.
김 부장은 이제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현재를 만들어온 완벽주의, 모든 것을 통제해서 확실하게 결과를 내려는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어린 시절 그에게 인정받을 기회를 주고, 커서는 그를 성공시켜온 최고의 친구를 버려야 한다. 그가 그럴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조차 하루 빨리, 완벽히 해내려 한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이제 그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자신에게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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