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구현하는 21세기 기업가사회
피터 드러커는 《넥스트 소사이어티(Managing in the Next Society)》(2002·한국경제신문)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높은 나라로서 한국을 꼽은 바 있다. 그러나 2004년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을 살펴보면 드높은 기업가정신의 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굴절된 반(反)기업정서가 팽배한 사회로 변질된 채 끝모를 경제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따라서 다시 기업가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회, 기업인이 우대받는 사회에 대한 각계의 요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즈음에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의 《실천하는 기업가정신》이 출간되었다.
드러커는 기업가(entrepreneur)에 대해 "변화를 탐구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기회로 이용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기업가정신이란 일종의 과학도, 기예(art)도 아닌 오직 '실천' 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드러커의 견해에 따르면, 기업가정신은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자기혁신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가정신은 경제에서 필요한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도 필요하고, 기업에서 필요한 만큼 공공서비스 기관에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사회가 '다음 사회'로 진보해 나갈 수 있다. 혁신과 기업가정신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 걸쳐 나타나는 다양한 기회와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매순간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혁신과 기업가정신은 원리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거창하기보다는 매우 간단하다.
이 같은 점에서 혁신과 기업가정신은 '혁명'과 대별된다. 드러커는 "혁명이란 오래된 부패에서, 아이디어와 조직의 파탄에서, 자기혁신의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다"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혁명은 해결책이 아니다. 혁명은 예측할 수도 없고, 방향을 종잡을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혁명의 결과는 틀림없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내세운 공약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에서 그와 같은 프로세스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므로 혁명은 19세기에 널리 퍼진 '환상'일 뿐, 그것은 한 사회를 다음 사회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추동력을 결코 갖지 못한다. 하지만 혁신과 기업가정신은 유혈사태, 내전, 강제수용소도 필요 없는, 즉 어떤 파국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일정한 목적과 방향을 갖고 통제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각각의 세대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을 실현 가능하게 이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정말 그 무엇보다 혁신과 기업가정신이 정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기업가 사회(entrepreneurial society)'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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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기업가 사회를 구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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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업가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이른바 혁신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혁신은 목적지향적이다. 혁신은 자율적·구체적·미시경제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혁신의 기회는 계획된 프로젝트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탈'에서 발견된다. 혁신의 기회는 예상치 못한, 불일치하는, 그리고 인식의 차이에서 얻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일탈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해지는 순간, 즉 계획자의 눈에 띄는 순간 혁신은 진부해지고 만다. 이처럼 혁신의 기회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대한 폭풍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속삭이는 듯한 미풍처럼 온다. 따라서 기업가 사회의 구현을 위해서는 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이 같은 혁신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촉진'해야 한다. 즉 기업은 끊임없이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정부는 기업이 첨단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첨단기술 자체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첨단기술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혁신의 비전과 가치를 지닌 정력적인 혁신가와 기업가로 가득 찬 경제가 먼저 존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기업가적 경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국가도 혁신의 기회를 얻을 수 없으며 기업가 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또한 개인은 계속학습(continuous learning)과 재학습(relearning)을 통해 자기혁신이 진부해지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경제주체들 간 상호 촉진 노력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21세기 '다음사회'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기업가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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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가 사회를 위한 새로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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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세계경제는 '관리 경제'에서 '기업가 경제'로 뚜렷하게 이동하고 있다. 몇몇 선진국은 이미 기업가 경제로의 전환을 마친 상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여전히 '관리'와 '규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드러커는 이 책에서 한국경제의 회생과 혁신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정부는 '굴뚝산업'의 쇠퇴에 따른 잉여노동력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첨단기술 벤처산업이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 때까지 각종 규제를 혁신하고 세금감면과 같은 기업가 경제를 위한 조세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아울러 비첨단기술 벤처산업을 육성함으로써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실업'의 위기상황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이미 효력이 다한 사회?경제 정책과 진부한 공공서비스 기관을 체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이로써 통제를 지향하는 관리 경제에서 자율을 존중하는 기업가 경제로 하루 빨리 이동해야 한다.
둘째, 기업은 결코 혁신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혁신의 기회를 상실한다는 것은 곧 '진부'해지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첨단기술의 개발은 모든 기업의 당면과제이지만, 이 첨단기술을 어떻게 혁신의 기회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프로세스상에서 혁신의 기회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고리들을 끊어내고, 생생한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날마다 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 각 개인은 자기혁신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기업가 경제에 바탕한 기업가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수행하지 않으면 뒤지고 만다. 각 개인은 변화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것으로, 그리고 혁신의 기회로 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계속학습과 재학습을 통해 평생에 걸쳐 자기혁신에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가 사회의 등장은 어쩌면 21세기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1873년 세계 대공황 속에서 태어난 '복지국가'는 현재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 수명을 다했다. 물론 고령화 사회와 출산율 저하라는 인구통계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가 다소나마 연명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지국가는 미래라기보다는 과거라는 사실이다. 이는 나이 많은 진보주의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 기업가 사회가 복지국가의 유력한 대안으로서 떠오르고 있는 2004년, 정녕 우리 사회는 기업가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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