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 속 개구리 3형제… 도요타에 혁신을 묻다
CBS경제부 권민철 기자
이유는 협력을 하게 될 경우 포드가(家)의 가족경영이 손상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세운 포드는 현재도 그의 후손들이 경영권을 소유하고 있다.
2.97%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지분으로 40%의 의결권을 관례적으로 행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포드는 GM뿐 아니라 도요타와 르노닛산이 제안해 온 협력 역시 거절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포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오너 일가의 방만한 가족경영으로 글로벌 시장의 변화와 경쟁체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난해 지적한 바 있다.
“고객만족을 최우선에 뒀던 도요타와 달리 시장 수요의 변화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포드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100년 넘게 세계자동차 산업을 주름잡았던 포드와 GM이 파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한 마디로 끓는 물속에서 안락사한 개구리에 견줄 만하다.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넣으면 곧바로 뛰쳐나오지만 따뜻한 물에 넣고 천천히 가열하면 온기에 적응하다 결국은 죽게 된다.
GM역시 온탕 속의 개구리와 다르지 않았다.
GM은 한 때 미국자동차 시장의 60%를 점유하면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환경변화에 부적합한 차량을 개발하거나 경영을 방만하게 이끌어 와 결국 위기를 맞게 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GM의 위기에 대해 “품질향상보다 단기수익에 치중한 경영과 노조와의 불합리한 관행들이 위기를 악화시켰다”고 최근 진단했다.
크라이슬러의 경우도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경영 위기를 겪다 정부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했지만 이후에도 다임러 벤츠와의 합병과 서버러스 캐피탈에 매각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미국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품에서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자만 때문에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고 자기 혁신을 게을리 한 결과였다.
로버트 E. 퀸의 저서 ‘Deep Change or Slow Death(근본적인 변화를 못하면 천천히 죽어간다)’는 어쩌면 이들 빅3의 말로를 예견하고 쓴 책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도요타는 이들 개구리 3형제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회사다.
도요타는 끊임없는 자기혁신으로 위기 때마다 기회로 반전시키며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을 누르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도요타의 첫 번째 위기는 53년 회사의 장기 파업 사태 때 처음 찾아왔다.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기를 든 노조가 80일 간의 장기 파업으로 맞선 끝에 회사는 경영진 사퇴와 노동자 1750명(25%) 해고라는 파국을 맞았다.
그러나 도요타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던 이 장기파업을 회사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도요타는 대대적인 개선[카이젠] 작업에 착수한다.
말단 직원부터 최고 경영자까지 생산현장에서 개선할 점을 찾아내고 이를 즉각 실무에 반영하는 현장주의와 눈에 보이는 관리체계의 구축을 통한 낭비의 제거 등이 바로 그 것이다.
이 개선작업으로 도요타는 이후 자동차의 품질향상과 비용절감의 단계를 높일 수 있었다.
또 ‘선(先) 성과 후(後) 분배’의 문화도 이때부터 정착됐다.
이후 73년 1차 오일쇼크 때 또 한 차례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는 JIT(Just In Time)체제가 돌파구가 됐다.
JIT란 불필요한 여분의 생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때 필요한 양만큼 앞 공정이 뒷 공정으로 받아 온다는 원리다.
‘재고가 많아질수록 회사는 필요한 것을 점점 더 가질 수 없게 된다’는 도요타 생산방식 (TPS)의 창시자 다이치 오노 전 도요타 부사장의 철학이 녹아있는 시스템이다.
석유파동을 계기로 낭비 제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협력업체들까지를 아우르는 JIT 체제를 구축하며 도요타는 오히려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이 당시 미국의 빅3는 석유파동으로 판매 급감을 맞았으나 도요타는 오히려 판매가 늘어났다.
73년 32만 7천대에서 74년 26만 9천대로 다소 주춤하더니 이듬해 32만 3천대로 회복한 뒤 76년과 77년에는 각각 38만 7천대와 57만 7천대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물론 노사간 타협과 양보를 통한 급여 삭감이라는 위기 극복의 기본 모델은 두 차례의 석유 파동기에도 작동했다.
도요타는 이후에도 엔고로 인해 몇 차례 위기를 더 맞았다.
미국과의 심각한 무역마찰로 발생한 급격한 엔고 상황에 대해 도요타는 원가 절감 운동을 통한 채산성 향상으로 맞섰다.
87년 엔고 당시 이전에 1달러에 230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이 ‘플라자합의’ 이후 120엔으로 2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모든 비용을 50%로 줄이자는 ‘챌린지 50 운동’ 같은 강도 높은 비용절감 운동과 생산성 향상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환율 같은 외부 환경 때문에 안정적인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도요타의 경영진은 해외 현지 생산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도요타는 87년 엔고의 위기를 딛고 불과 3년만에 순이익을 2.7배나 늘릴 수 있었다.
93년부터 95년 사이에 찾아온 엔고 역시 매출과 경상 이익 하락을 야기하며 도요타에게 위기로 찾아왔다.
이 때 도요타 노사는 “노사가 상호신뢰와 상호책임으로 기업의 발전에 노력하자”는 내용 등을 ‘21세기를 향한 노사의 결의’를 채택해 위기극복에 성공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도요타에게 모든 시기는 위기였다.
도요타가 일본 기업 사상 처음으로 1조엔대 순이익을 올린 2003년에도 노조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본급을 동결하고 보너스를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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