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요차이 벤클러, 『펭귄과 리바이어던』
여러분 라디오헤드Radiohead 좋아하세요? 그게 뭐냐고요? 영국의 록밴드입니다. 93년에 발표한 ‘크립(Creep)’이란 노래 유명한데요, 만일 잘 모른다고 하신다면—“도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산거야!”—지금 한번 인터넷에 검색해 들어보시기 바립니다. 근데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고요? 오늘 다룰 얘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이 친구들이 07년에도 발매한 앨범인 「인 레인보스(In Rainbows)」를 판매한 방식에 대한 것이죠.
예전에도 그랬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요즘도 사람들 앨범 잘 안 사죠? 노래도 돈주고 잘 안 다운받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넷상에서 약간의 불법을 감수하면 공짜라고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에 대한 문제해법으로 제기된 것은 벌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간혹 뉴스에서 불법으로 음원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비싼 벌금을 때리는 걸 보도해주기도 했죠. 이제부터 이걸 두고 ‘리바이어던Leviathan’전략이라고 명칭하도록 합시다. 아니, 갑자기 튀어나온 리바이어던은 무어냐? 그건 1651년에 영국의 철학자 홉스가 쓴 국가론 저서의 제목입니다. 원래는 구약 성경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괴물인데, 홉스가 강력한 권력을 독점한 왕권이 질서잡힌 세상을 위해 법적무력을 독점한 괴물 리바이어던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비유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차용했지요.
자자, 다시 음악얘기로 돌아옵시다. 자, 헌데 그래서 문제가 잠잠해졌나요? 아뇨. 불법으로 공유하는 사람 하나를 잡으면 둘이 생겨나고, 공유사이트 하나를 폐기하면 세 개, 네 개가 다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07년에 라이오헤드가 앨범을 발매할 때도 상황이 비슷했지요. 여기서 라디오헤드는 법적인 처벌을 단행하는 리바이어던 전략을 폐기하고 다른 활로를 모색하게 됩니다. “‘리바이어던’ 전략이 효과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말에 몇몇 아티스트들은 기술 장벽을 세우거나 초등학생을 고소하는 방법이 아니라 음악 팬들의 협력 충동을 이용하는 매우 혁명적인 전략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아티스트들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음악을 듣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규제와 강제라고 가정하는 대신, 진정한 팬이라면 근본적으로 자신이 즐기는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를 지원할 마음이 있을 거라고 가정했다.”1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을 단행한 것입니다. 앨범을 온라인에 올려서 다운로드 할 때 지불하고 싶은 가격을 스스로 정해서 지불하도록 한 것이지요. 막말로 팬들이 겨우 몇 센트만 내고 앨범을 다운로드 한 다음에 그 복사본을 만들어 인터넷에 마음대로 뿌려도 막을 길이 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단정하고 모든 기초를 쌓아올리는 고전경제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합리적인 인간이 할 수 없는 정신착란적 짓거리를 한 셈이지요. 자, 그래서 라디오헤드가 쪽박을 찼을까요? 아뇨.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앨범을 구입했고요, 발표한 첫 주에 16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가 저술한 이 책 『펭귄과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들과 분석은 이런 현상이 결코 우연한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도요타, 카우치서핑, 위키피디아, 충칭의 오토바이 공정 과정 등등…… 이런 식으로 단순히 인간을 이기적인 무언가로 보는 도식에서 벗어난 사례들이 세상엔 넘쳐납니다. 사실 저는 예전부터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명제 하에 쌓아올려진 ‘합리성’이란 것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의심을 했었는데요,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바로 제 옆자리에 앉은 짝꿍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걔는 제가 사탕을 먹고 싶다니까 자기 주머니에 하나 있던 사탕을 꺼내서 저에게 선뜻 건네줬었거든요. 저역시 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자발적으로 건네주거나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정’도 ‘이기적임’이란 개념 안으로 구겨져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이기적인 행동은 생일 케이크의 마지막 한조각도 나눠 먹으려 하지 않거나 수백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고 회사를 망가뜨리고도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챙기는 행동 등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진화생물학자들이 정의하는 ‘이기적’ 행동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행동일 뿐이다. 그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이 흔히 이타적이라고 하는 행동조차도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이기적’이 될 수 있다.2
진화생물학에서 정의하는 이기적임의 정의를 따라갔을 때, 정말 신기하게도 이기적임의 결론은 이타적임으로 귀결됩니다—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궁극적 결론도 바로 여기죠. 적어도 군집동물이나 같은 동족 내에선 스스로의 유전자를 후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같은 집단 내에서 이타적 행동을 함으로써 서로 상부상조하는 체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편이 실제로 생존률이 더 높아지니까요. 그래서 이기적임의 궁극적인 지점에선 이타적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언어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타적인 것들을 관습화하여 기억하게 되고요. 주위에서 보이는 이타적인 전통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 이 맥락에서 다시 이기적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고전경제학을 떠올리니 어떠신가요? 애덤스미스가 우리가 식탁에서 빵을 먹는 것은 빵굽는 사람의 이타심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이기심 덕분이고, 이게 모이고 모여서 보이지 않는 손이 되느니 하는 얘기들을 생각해보니 어떠신가요? 애매하죠. 오랫동안 우리네들을 잡고 흔드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고전경제학이나 홉스의 정의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런 식의 명제가 가져주는 단순함에 끌리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됩니다만, 그럼에도 그럴때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격언을 상기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간단해야 하지만, 너무 간단해서는 안 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이겠지만, 인간은 직관적으로 아는 것 이상의 것들을 감추고 있는 아주 복잡한 생명체입니다. 단순히 유전자라는 범위 내에서도 이기적임이 이타적임으로 귀결되는 역설적인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에 문화적 맥락과 역사, 심리, 관습 등의 요소들이 가미된다고 생각해보세오. 이 모든 변수값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낼 텐데, 그 복잡성이 가히 상상이나 되십니까? 그런데도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명제 하나로 경제학을 설계하고 그 경제학의 논리로서 모든 인문, 사회, 심리, 심지어 종교적인 부분까지도 모두 재단하려고 듭니다. 여기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팁을 하나 드리자면, 원래 사기꾼들이 복잡한 것을 단순하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꾀어내는 법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명제가 워낙 수많은 제도권 교육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까, 이 명제가 그 자체적으로 일종의 당위명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이기적이어만 해’ 따위의 주장이 등장하는 셈이지요.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흥미롭게도 그럼으로써 실제로 인간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이 명제가 옳았음을 몸소 증명하게 됩니다. 기묘한 논리죠.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보는 견해는 달갑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실현적인 예언이 된다.”3 늘 그 자들이 운운하는 ‘현실주의’에서 ‘현실’이란 게 무엇인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인간은 천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손’이나 ‘리바이어던’에 전적으로 기초한 모델들이 말하는, 무지몽매하고 이기적인 로봇도 아니다. 인간의 욕구와 목표, 동기는 다양하다.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는 물질적인 이익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관심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이 사리사욕에 압도되도록 놔둘 정도로 이익에만 몰두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동기는 다양하다. 특정한 필요나 목표에 남들보다 더 많이 관심 갖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사가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다른 사물에, 다른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남에게,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옳고, 공평하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천성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유형이다. 바로 그 때문에 새로운 법률이든, 비즈니스 모델이든, 인터넷 플랫폼이든, 아니면 자원봉사 활동이든, 성공적인 시스템을 설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실제 인간의 모습인 협력적인 존재 유형과 사회 유형을 알아야 한다. 서로 협력하는 사회나 조직, 시스템을 설립하고자 한다면, 이 모든 동기들과 그 동기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4
좀 길지만 통째로 인용해봤습니다. 제가 적고 싶은 글이기도, 또 여러분에게 소개하고픈 글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도 아니고요, 따라서 단순히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에겐 이타적인 부분이 있고요, 이는 현실 속에서 실제로 협력이란 형태로 하루에도 여러번 구현되고 있지요. 타자와 대화를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알면서 생겨나는 관계와 친근감이란 것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이기심에 함몰되지 않는 빛이 되어 우리네들의 생활을 비춥니다. 한번 물어보죠. 여러분의 인생은 배신이 밥먹듯 벌어지는 영화속 권력투쟁과도 같은 지옥인가요? 경우에 따라서 그런 삶을 사시는 분들이 없다고는 단정하진 못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할거라는 것을 자신있게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사는 게 다수인 집단이라면, 그 집단은 진즉에 망했을 겁니다.
예시를 좀 들어볼까요? 헌혈아세요? 예전에 독일에서 헌혈을 하면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했었습니다.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마인드 아래에선 당연히 헌혈이 증가해야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냥 자발적으로 무보수 헌혈을 할 때보다 더욱 헌혈양이 줄어들었지요. 왤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냥 헌혈을 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순수한 베풂’을 한다는 상호작용과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수를 받으면 자신의 행위가 어떤 통제를 받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불쾌감과 반항심을 보이게 되지요. 돈을 받기 전까지는 ‘호혜적인’ 행위였던 것이 돈을 받는 순간 ‘비지니스’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헌혈외에도 자잘한 벌금들 역시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지요.5 순수한 선행은 일종의 접대나 이기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변질되어 이해되게 되고, 사람들은 이를 피하거나 혹은 반항하려고 합니다.
구축현상을 설명하는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심리학 이론으로, 심리학자인 데시와 라이언의 이론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 자신의 선호도나 원칙, 행동을 직접 제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보상과 처벌에 의해 조종되거나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율성에 대한 의식이 위협받게 되면서 잠재의식에서라도 거부하거나 반항한다.6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금전적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모든 경우에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위키피디아나 여러 사이트 혹은 오픈소스에서 보여주는, 무보수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열정은 바로 이러한 ‘자율성’이라는 키워드가 극대화되었을 때 인간의 이타심과 효율성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일 것입니다. 실제로 네이버 블로그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 파워블로거들을 블로그를 보면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이 여러 정보들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단순한 금전이나 이기성 아래에서는 어떤 정체성이나 소속감 같은 것이 잘 형성되지 않는 법이지요.
이런 예시는 사회에 너무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꼭 좋은 기업에 입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버드와 같은 유수 대학의 연구단지에 머물려고 하지요. 왜죠? 돈? 이런 인재들이 기업에 들어가면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될 것인데도, 이들은 기꺼이 이 연봉을 포기하고 대학강단에 머무릅니다. 다시 묻죠. 왜죠? 그건 기업이 아닌 학계에 몸을 담으면 좀 더 자유로운 탐구가 가능할뿐더러,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기에 그 집단이 추구하는 창의성, 발견, 공동의 목표와 같은 가치들이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의미로 충만한 삶입니까? 구글같은 기업이 점차 대학 캠퍼스와 같은 환경으로 기업을 바꿔나가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7
인간의 동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사람들의 행동을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시스템을 결합하려면 자신들을 같은 방향으로,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물질적인 행위(기여, 이익)을 감정적인 욕구나 사회적 상호작용, 도덕적 약속보다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8
다시 맨처음 들었던 라디오헤드의 예시로 돌아가볼까요? 라디오헤드의 앨범을 기꺼이 구입했던 팬들은 자신이 음악성에 자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성과, 그리고 그에 따른 참된 소속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앨범을 돈 주고 구입했던 것이지요. 이는 단순한 금전적 이기심 너머에 있는 이타적 인간성에 대한 부분들을 건드림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례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세상은 이런 사례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스템의 세상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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