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질곡 온몸으로 관통한 이소룡 키드들
한국경제 중추 헌신했으나 막다른 골목 직면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동양에서는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불렀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립(而立), 불혹(不惑)을 거쳐 지천명의 세월을 훌쩍 넘긴 한국 현대사의 주역들이다.
55년~63년생인 이들은 6.29선언을 쟁취하며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돌린 민주화 투쟁 세대이자, 한강의 기적을 일군 경제 성장의 주역이다. 또 고등학교 시절 브루스 리에 열광한 이소룡 키드이자 매주 일요일 장학퀴즈에 빠져들던 장학퀴즈 세대였다.
지난 1980년대를 풍미한 홍콩 느와르 영화를 지배하던 '의리' '신념' '충성'의 가치를 내면에 받아들인 이들은 주요 기업 창업자들의 비전을 뒷받침하는 실행의 고수들이었으며, 상승 욕구가 매우 강했다. 하지만 지천명을 훌쩍 넘긴 나이,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들은 백척간두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직장을 내 집같이 여기며 한평생 충성해 왔지만, 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어느덧 달라졌다.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며 익힌 암묵지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으며, 직장에서는 구조조정의 일순위에 오르는 미운 오리새끼 신세다. 부쩍 약해진 시력, 만취 다음 날이면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피로감은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다가올 10년은 지나온 세월에 비해 더욱 가혹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천명의 세월을 훌쩍 넘겼지만, '천리(天理)'를 깨우치기는커녕 가족 부양조차 힘든 상황에 내몰리는 베이비부머들. 새롭게 시작하는 제 2의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 이코노믹리뷰 > 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생존 노하우를 집중 분석했다.
'인생은 문틈으로 백마 두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중국의 시성인 두보가 평생 전란에 시달리며 한시도 편할 날이 없던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남긴 명구다. 소그드인인 안록산의 반군을 피해 전국을 떠돌던 세월을 돌이켜서 생각하니 자신의 삶이 한바탕 꿈에 불과했다는 회한(悔恨)이다.
지난 1974년 가을, 서울 충무로 명보극장의 스크린. 후두둑 비가 내리는 대형화면에서는 호스티스로 분한 여배우 한 명이 남자배우 신성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같은 해 대학에 입학한 55년생 꿈나무들은 안인숙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70년대의 김태희이자 송혜교였다.
< 영자의 전성시대 > < 바보들의 행진 > 은 박정희 정부 독재를 비꼬는 은유였다. 팬티 하나 달랑 걸친 채 서 있는 대학생 병철을 바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머무는 영화관 밖은 막막했다. 박정희 정부는 두 해 전 10월 유신을 발표하며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전격 부쳤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이들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사회풍자 영화 전성시대였다. 가요계에는 단발머리의 소녀 가수가 뜨고 있었다. 1975년에 < 당신은 모르실거야 > 로 데뷔한 단발머리 혜은이는 15살에 불과했다. '진짜 진짜 좋아해'를 부르던 그녀는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
장학퀴즈는 베이비부머들의 '미드'였다. 경기고, 서울고, 경북고, 휘문고를 비롯한 장안의 내로라하는 명문 고등학교 수재들이 겨루는 장학퀴즈는 전국의 베이비부머들을 들썩이게 했다. 중학교 때부터 치열한 입시지옥을 통과한 이들의 대학생활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캠퍼스에 서너 명이 모여 있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짭새(사복경찰)'는 3공화국 대학사회 풍경화의 기묘한 소품이었다. 이들에게 삼중당 문고는 마음의 양식이자 도피의 공간이었다. 가로 세로 10x15센티미터의 삼중당 문고는 값도 저렴한데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소룡 키드들, 삼중당에 매혹
삼중당 문고가 지적인 허기를 채워주는 양식이라면, 삼양라면은 배고픔을 달래는 한 끼 식사였다. 노란 양은냄비 위에 물을 끓여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을 풀어 끓인 라면은 최고의 특식이었다. 1970년대 베이비부머들은 '사회성 짙은 영화' '혜은이' '장학퀴즈' '삼중당' 세대이기도 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야당인 신민당의 총재 김영삼 전 대통령이 YH무역 여공 사태에 항의, 단식투쟁을 하며 던진 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사회 진출을 앞둔 70년대 말은 뒤숭숭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집권세력의 통치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수출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의 호소를 즐겨 인용했다. 그의 집권 기간 대한민국의 수출 규모는 10배 이상 급성장했다. 궁정동 안가에서 울려 퍼진 한 발의 총성은 박정희 30년 독재 체재의 붕괴를 알리는 복음이었다.
민주주의의 봄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死春)'. 영원한 2인자 정치인 김종필이 80년 정국을 지켜보며 남긴 발언은 훗날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전두환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 항쟁을 진압하며 서슬 퍼런 공안통치의 시대를 개막한다.
서울의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스크린이었다. 1980년대, < 애마부인 > 을 비롯한 농도 짙은 에로 영화들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안소영, 오수비를 비롯한 여배우들의 농염한 몸매가 스크린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1980년은 컬러 텔레비전 방송과 더불어 막이 올랐다.
대학가는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으며, 화염병이 난무했다. '쉬이익' 요상한 소리를 내며 교정을 가로지르는 지랄탄은 베이비부머 세대들 사이에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운동권으로 찍힌 베이비부머들은 군대에 끌려가 녹화교육을, 삼청교육대에서 모진 훈련을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두 얼굴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전 국민을 상대로 의료보험을 실시했다. 또 외국여행을 허용하고, 통행금지를 풀었다. 하지만 자신의 형을 비롯한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그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찬물을 끼얹은 이들이 바로 베이비부머들이었다.
87년 민주항쟁 이끈 '넥타이 부대'
발단은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의문의 죽음.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는 용기 있는 의사의 제보로 거짓으로 드러났다. 1987년 30대 넥타이 부대들과 대학생들, 고등학생들까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쳤다. 이들은 무서운 응집력을 발휘한다.
한국경제호가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려가던 80년대, 빈농 출신이 많던 베이비부머 세대는 쌀 한 톨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체득하고 있는 세대였다. 이들의 잠재력을 간파한 경영자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었다. 가발이나 봉제인형 사업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를 꾀하던 경영자들의 눈에 띈 인재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화려한 비상의 날갯짓을 했다. 삼성, 대우 등 주요 기업들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삼성은 반도체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선경도 직물에서 석유산업으로 보폭을 넓혔다. 55년 소띠 베이비부머들의 전성시대였다. 58년 개띠들도 빼놓을 수 없는 수혜자였다.
하지만 '화복(禍福)'은 문이 따로 없다고 했다. 지난 1997년, 동아시아의 태국에서는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가 닥쳤다. 태국에서 옮겨 붙은 외환 위기의 불길이 한국경제호를 덮친 것. 환투기 세력의 맹공을 버티지 못한 태국 정부는 백기투항을 했다.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던 태국의 바트화 표시 파생상품에 투자한 기업들에서 곡소리가 났다. 최대 피해자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3당 합당 카드로 집권에 성공한 김영삼 정부의 국제협력기구 가입은 '트로이의 목마'였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과 더불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으나, 남은 것은 파탄 난 경제였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길을 돌린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외환 위기의 유탄을 맞아 비틀거렸다. 제일은행 직원이 만든 눈물의 비디오는 이들의 현실을 비추는 풍경화였다.
지난 1998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직원들은 오열하고 있었다.
이 은행 직원이 제작한 이른바 '눈물의 비디오'는 외환 위기의 여파로 흔들리는 전후 세대의 현주소를 기록한 비망록이다. 외환 위기로 촉발된 은행권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알리는 서곡에 불과했다.
지천명에 맞은건 살벌한 구조조정
종신고용이라는 화려한 봄은 가고, 상시 구조조정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55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시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다. '인력은 비용이 아닌 자산'이라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금언(金言)은 사치에 불과하다. 살아남은 베이비부머들은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추로 성장했다.
삼성그룹의 신임 최고경영자들의 평균 나이가 51세. 전후세대의 막차를 탄 이들 경영자들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초일류 기업의 정상에 오른 선택받은 소수들이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이들 잘나가는 경영자를 제외한 대부분은 일자리가 언제 떨어질지 몰라 좌불안석이다.
60세까지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내고 은퇴를 한다고 해도 소득대체율은 56%에 불과하다. 급여의 절반 정도를 받는다는 얘기다. 당뇨병을 비롯해 건강에 이미 적신호가 켜진 이들도 많다.
80년대는 홍콩 암흑가의 사투를 그린 느와르 영화 전성기였다. 베이비부머들은 의리, 헌신, 충성 등의 가치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 미혹된 세대였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 뿐"이라며 "(전후세대들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세상은 안개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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