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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考

서건창

입력 : 2014.10.16

프로야구 넥센의 2루수 서건창(25)은 요즘 가장 ‘핫’한 야구 선수다. 올 시즌 그는 15일까지 치른 127경기에서 안타 199개를 쳤다. 1994년 이종범 한화코치(당시 해태)가 세운 역대 한 시즌 최다 안타기록(196개)을 넘어, 사상 최초로 200안타 고지를 넘보고 있다. 타율(0.369)과 득점(134점)에서도 1위를 기록하고 있어 ‘타격 3관왕’도 유력한 상황이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200안타를 달성하면 정규시즌 MVP가 가장 유력한 선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인생을 찬찬히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로야구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넥센의 서건창. /스포츠조선

시련으로 시작한 야구 인생

 

 

그는 처음부터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광주일고 3학년이던 2007년 왜소한 키(176㎝)에 팔꿈치 부상 경력까지 안고 있어 2008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구단의 외면을 받았다. 고교1학년 시절 키스톤 콤비로 1년가량 호흡을 맞춘 적이 있던 두 학년 선배 강정호(27·넥센)가 2006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순위로 지명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서건창은 고려대로부터 입학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2008년 신고선수로 LG 입단을 선택했다. 계약금도 없는데다 신분도 불안정한 신고 선수(일명 연습생)를 자처하면서까지 프로행(行)을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어머니 정영숙(48)씨 때문이었다.

서건창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 정씨는 서건창과 여동생 건주(24)를 홀로 키웠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서건창이 야구선수의 꿈을 잃지 않도록 뒷바라지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서건창은 빨리 프로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LG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2008년 6월, 신고선수에서 정식 등록 선수로 전환됐지만 1군 무대 기회는 한 타석 뿐이었다. 그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고 서건창에게 더 이상 1군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팔꿈치 부상까지 재발하면서 수술대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1년만에 LG에서 방출당했다.

◇군에서 이 악물고 훈련

2009년 갈 곳을 잃은 서건창의 선택은 경찰청 야구단이었다. 빨리 군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야구를 하면서 다시 프로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경찰청의 벽도 서건창에겐 높았다. 경찰청 야구단은 프로 경력이 즐비한 야구 선수들이 지원하는 곳이다. 1군 성적이 ‘1타석 무안타’에 불과한 서건창은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서건창은 현역 육군 입대를 선택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2년 동안 방망이를 내려놓고 소총을 잡아야했다. 하지만 그는 군에서도 야구를 놓지 않았다. 그는 31사단에서 복무했다. 근무지는 예비군 부대였다. 경계근무를 서면서도 꾸준히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머릿 속으로 자신이 공을 때리는 모습, 주루 플레이를 하는 모습, 수비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웨이트트레이닝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11년 9월 서건창은 병역 의무를 마쳤다. 신고선수 테스트를 받을 구단을 알아보다 때마침 광주일고 은사(恩師)인 김선섭 광주일고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넥센에 입단 추천서를 넣어놨으니 테스트를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테스트를 받은 서건창은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연습생 신화를 쓰다

우여곡절 끝에 넥센 유니폼을 입은 서건창은 그해 12월 정식 선수가 됐다. 마무리 훈련도 소화했다. 하지만 주전 2루수였던 김민성(26)의 존재로 2012년 1군 활약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김민성이 개막 직전 자체 청백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개막전 2루수는 서건창의 몫이 됐다. 어렵사리 잡은 기회를 서건창은 놓치지 않았다. 두산과 벌인 2012년 개막전에서 9번 2루수로 선발 출전, 0―1로 뒤진 5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때렸다. 넥센은 서건창 덕분에 결국 6대2로 승리했다. 이후 서건창은 2루수 자리를 고수하며 타율 0.266, 115안타 39도루를 기록하며 2012년 신인왕에 등극했다. 2루수 골든글러브도 석권했다.

신인왕 시상식에서 서건창은 어렵게 뒷바라지한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힘든 시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어머니와 가족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진화하는 서건창

지난해는 부상으로 주춤했다. 발가락 부상 때문에 전체 128경기 가운데 86경기만 출전했다. 하지만 올해 ‘안타 기계’로 거듭나며 부활했다. 치열한 연구 끝에 얻은 타격폼 덕분이다. 지난해까지 그는 방망이를 잡고 두 손을 어깨 높이로 올렸다. 일반적인 ‘다운스윙’ 폼이었다.

올해부터는 손을 가슴과 배 사이까지 내렸다. 배트를 가슴에 최대한 붙이고 타석에서 다리를 오므린다. 공이 타석까지 오면 배트를 빠르게 감아 돌리는 식으로 때린다. 단순해 보이는 타격폼이지만 전문가들은 밀어치기와 당겨치기가 자유로운 타격폼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힘이 별로 들지 않아 짧은 스윙이 가능하다고 한다. 2군 후배들 중에는 그의 타격폼을 따라하는 선수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늘 다른 선수의 귀감이 되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에게 팬들은 ‘서(건창) 교수님’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이제 그는 ‘전설’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서건창은 지난 13일 광주 KIA전 2회에 상대 선발인 김병현(35)을 두들겨 197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이종범이 갖고 있던 역대 한 시즌 최다 안타를 20년만에 경신한 것이다. 서건창에게 안타를 맞은 김병현도, 서건창에게 기록을 내준 이종범도 모두 서건창과 같은 광주일고 출신의 대선배들이었다. 서건창은 이른바 ‘야구천재’라고 불리던 고교 선배 두 명을 울리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서건창은 마지막 남은 1경기인 17일 목동 SK전에서 200안타에 도전한다. 안타 1개만 추가하면 33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아로이 새겨질 대기록을 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