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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인력난을 이겨낸 중기들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하는 케이블을 생산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3대 통신사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고려오트론. 이 회사의 최하나(36)씨는 입사 7년째인 지난 1월 차장으로 승진했다. 함께 입사한 다른 사원보다 2~3년 빨리 승진한 것이다. 윤성진(33) 과장도 마찬가지다. 광통신 분야를 전공했고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 입사 4년 만에 승진했다. 이 회사에서 승진은 나이나 성별, 근무 연차와 전혀 무관하다. 오로지 전문성과 능력으로만 평가한다.

 

고려오트론이 중소기업에서는 흔치 않은 인사제도를 도입한 건 사실 인력난 때문이었다. 숙련된 직원들 중에도 이직(離職)이 잦았다. 정휘영(59) 고려오트론 대표는 젊은 사원들이 빨리 전문성을 갖추도록 만드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정 대표는 "'무조건 능력 위주'라는 사내 문화를 만들어 성별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오직 능력만으로 승진을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때 15%에 달했던 이직률이 최근엔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그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공감대가 직원들 사기를 크게 끌어올렸던 것이다.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력난'이다. 숙련된 인력들은 회사를 떠나고, 젊은 인력들은 중소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만성적인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독특한 인사제도와 인력 관리로 돌파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그런 중소기업 사례를 묶어 10일 '인재가 미래다'라는 책을 펴냈다.

◇사원 교육으로 인력난 해결

전남 함평에서 전자부품 내화물을 제조하는 와이제이씨는 '지방'과 '중소기업'이라는 2가지 핸디캡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원하는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와이제이씨는 '파격적인 교육 지원'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석·박사 과정을 밟는 직원은 그 비용을 100% 지원하고, 매주 2회 외부 강사를 불러 일본어를 가르쳤다. 모든 사원에게 연간 6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도록 지원한다.

충북 청원에서 전기·전자·반도체 장비용 정밀부품을 생산하는 제이비엘도 비슷하다. 직원의 70%를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특성화고 졸업생으로 뽑아 이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제이비엘의 이준배 대표는 "될 성부른 나무를 데려다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회사를 떠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원들 중에는 교육받기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40년째 가스 용기 밸브를 만드는 영도산업은 2009년부터 3년간 '일과 학습의 병행'이라는 주제로 전 사원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처음엔 "왜 굳이 이렇게 교육까지 받아야 하느냐"는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교육 후 생산성이 2배 이상 향상되자 사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 결과로 영도산업은 2006년 '대한민국 컨설팅혁신대전'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인력개발처 구재호 처장은 "중소기업들은 제품만 잘 만들면 될 뿐 사원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인력을 공급받으려면 인재를 데려다 직접 키워 쓰겠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채용·보상 제도 도입

중소기업 형편에 맞는 임금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의 이직을 예방하는 중소기업들도 있다. 대구에 있는 산업기계 제조업체인 플렉스피이는 직원들의 이직률이 아주 낮다. 플렉스피이가 개발한 독특한 연봉제도 때문이다. 사원들은 입사 후 1년이 지날 때마다 평균 350만원씩 연봉이 오른다. 플렉스피이 어온석 대표는 "대구지역 비슷한 중소기업에 비해 매년 연봉 인상액이 100만원 정도 많은 편"이라며 "중소기업은 직원을 늘리고 싶어도 쉽지 않은데 우리는 지난해에만 26명에서 4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직원들은 10년을 넘기지 않고 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년을 넘기면 보통 장기 근무로 이어진다. 계량·계측기를 생산하는 나노하이테크는 10년 근속자에게 1000만원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장기 근속을 유도한다. 중소 인쇄·출판업체인 성우애드컴의 경우 10년간 근속한 직원에게 개인 명의의 차량을 제공한다.

배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중요 인력을 오래 머물게 하려면 기업의 목표를 사원들과 공유하고, 향후에 급여나 창업 등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